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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

30일 간의 연인

마주보다 Ⅳ

주변에선 직장 생활이 별것 없다고, 오히려 학생 때가 좋다고들 말했지만 졸업 후 학생이라는 신분도 아닌 지현에겐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힘들더라도 사회적인 독립을 한 그들이 부러울 뿐.
“아, 내가 괜한 소리를 해서 너를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구나.”
미안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꺼내는 빛나의 말에 지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나도 느끼고 있었어. 조금만 더 기다려보다가 나도 이력서를 여기저기 다 뿌려봐야 할 것 같아. 한두 군데만 넣어선 안 될 것 같네.”
“그래도 살면서 예의상 백조기는 있어줘야 해. 이런 공백기가 있어야 직장이 눈물겹게 고맙지. 우리처럼 절박한 때 없이 취직한 배부른 것들은 안 돼. 징징거리기만 하고. 술이나 마시자!”

“수환아, 나 취직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다가 무기력하게 죽는 거 아닐까? 갑자기 그게 너무 무섭다. 아니, 어디든 취직할 순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원하는 곳이 있긴 할까? 난 내가 뭘 하고 싶은 걸까? 잘하는 건 알겠는데,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토익도 자격증도 대외적 활동까지도, 뭘 위해서 한 건가 싶기도 하다.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네가 부러워. 하고 싶은 것도 정확하고, 해야 할 일도 확실한 네가 너무나도.”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낸 걸로 부족해 속을 뒤집어 탈탈 털었다. 어디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못한 이야기였다. 취직한 친구 앞에서 하기엔 공감되지 않을 것 같아 숨겼고, 취직 못한 친구 앞에서 꺼내기엔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였기에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린 것은.
-내가 읽은 책에서 그러더라.
“…….”
-‘원하는 일’은 때때로 하기 싫은 일, 방황, 귀찮은 일을 만나다 보면 발견된다고. 지금 그 방황이 널 ‘원하는 일’로 인도할 거야."
정말이지 특별히 위로를 바란 것도, 어떤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수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 어디선가 울컥하고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방황이 원하는 일로 인도한다라…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현은 어쩌면 자신이 위로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길을 내가 응원할게.
까만 밤을 울리는 담담한 목소리가 마음위로 별처럼 떨어져 내렸다. 정말로 정수환은 어떤 길이든 자신의 손을 잡고 지지해줄 것만 같아서,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서 가까스로 잠재워놓았던 울컥거림이 터져 나왔다. 아직은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추운 3월 끝의 밤, 지현은 밤하늘에 기대 소리 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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