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 그것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스물일곱이나 되었는데도 아린의 의지는 늦잠과 야식과 자기합리화 앞에서 고꾸라져버렸다. 아린은 자신 같은 의지박약들이 득실거리기에 세상이 돌아가는거라고 생각했다. 꿈같은 이야기가 언제나 '남의 것'인 이유는 사람들 대부분의 의지가 유치원에 입학만 했을뿐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서글픈 사실이 아린에겐 가장 큰 위안거리였다. 동시에 아린은 자신이 인생의 낙오자 집단에서 위안을 얻으면서도 자신은 그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기 애써 믿는 이중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나도 진짜 괜찮았는데.....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그냥 모든게 견딜수가 없다. 나혼자 있으면 다 견딜만하고 괜찮다가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괜히 억울하기 끝도 없이 화만 나. 나한테만 집중하는게 우울증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 신물나게 들었어. 하지만 죽어도 그게 안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되니?"
"정말이지 청춘이 싫다..... "
무엇이 꽃다운 청춘이란 말인가. 젊음을 그리워하는 중년보다 젊음이 사라져가는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며 손쓸수 없는 청춘이 더 잔인했다.
아린은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껍데기를 보았다. 그것은 아무도 볼수없는, 오로지 본인만 의식할 수 있는 투명하기 단단한 껍데기였다. 한편으로 원한다면 언제든 부수고 나올수 있는 연약한 껍데기이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은 누구의 압박이나 협박에 의해서가 아닌, 자기 의지로 그 속에 틀어박혀 껍데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 이 속에 갇혀있다기 불평하며. 이쯤되면 고통을 즐긴다고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니들 인생에 반전이 있는줄 알아? 어른되면 다 폼잡고 멋지게 살게 될줄 알지? 웃기지마! 열네살이나 스물네살이나 인생 다를거 없어."
- 우주야, 난 정말 네인생에 어떤 야망도 없는거야?
- 당연히있지. 날 뭘로 보는거야?
- 두루뭉술하게 미래에 한탕할 거라는둥 로또 당첨될거라는둥, 뭐 그런거 말고
- 하지만 난 진짜 미래에 성공할꺼라고
- 그러니까 대체 뭐로? 뭐로 성공할꺼냐고
- 원래 진정한 성공은 길가다가 반짝!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거라고
-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그렇게 믿으면 안 불안하니?
- 응
- 만약에 모든게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 무슨뜻이야 ?
- 네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시기가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그땐 어떻게할래?
- 무슨뜻이야?
- 네 인생의 정점이 영원히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거냐고. 네가 말하는 인생의 가장 반짝이는 시기가 애초부터 네인생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 난 지금 충분히 반짝거리는 시기를보내고 있는데?
- 도대체 어디가?
- 젊고 애인도 있고 멀쩡한 몸으로 돈도 벌수있고 무엇보다 건강하고 마시고 싶을때 마시고
- 그게 다야?
- 이정도에 만족하면 큰일 나기라도 해?
이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갖고있는 것도 많잖아
- 우주야, 난 잘살고 있는걸까?
- 잘살고 있잖아. 어디 아픈것도 아니고
- 난 가끔 내 인생이 자기합리화만 주구장창하다가 끝나는건 아닐까 두려워
-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어떤 인간인지 모른다니까? 난 왜 그랬을까 자책하면 뭐하냐고. 그렇게 자신을 비난하고 실망할수록 자기만의 우울한 세계에 틀어박히게 되는데. 완전 마조히즘이야
-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야 고치고 다시는 반복 안하지.
- 넌 이미 네 문제가 뭔지 알잖아. 너한텐 끈기와 오기가 없다며?
자꾸 파고들지마. 제발 좀 버려. 우리 아빠가 그랬어. 나이를 먹는다는건 무언가 버리는법을 배우는 거라고. 버릴수록 행복해지는 법을 깨닫는거라고
- 뭘 갖고 있어야 버릴게 있지
- 그 자학하는 버릇부터 좀버려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어른되면 다 폼잡고 멋지게 살줄 알았지?" 라며 주인공이 학원강사 일을 하던 학원 학생들에게 소리치고 나가버리는 장면.
20살. 21살. 22살까지만 해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한번에 와서 그렇게 쭉쭉 뻗어가던 것 처럼 대학을 졸업해도 내 자리가 있고 지금보다 더 멋져진 모습으로 진짜 어른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스물넷. 졸업이 6개월도 안남았지만 난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내가 하고있는게 맞는지. 내가 갈곳이 있을까. 괜찮게 살고 있는걸까. 괜찮게 살았던 걸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점점 확신이 없어지는거 같다.
나만 모르는게 아니고 요즘 애들 다 몰라. 라며 위안과 자기합리화를 하고, 겨우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며 아. 그런대로 잘 살고 있는거야. 잘하고 있어. 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난 가끔 내인생이 자기합리화만 주구장창하다가 끝나는건 아닐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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